검색결과
'전태일 사건'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7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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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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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분신자살사건(197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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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80475
날짜 : 1970.11.1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에 관련한 내용. -사회운동의 지평을 연 사건 -내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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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과 사건으로 본 70년대 이야기② - 전태일 분신과 노동운동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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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89428
날짜 : 1991.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70년대 한국 사회의 역설 전태일 분신의 사회·경제적 배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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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청년, 아름다운 사건을 위한 후원모금 : 당신을 영화제작자로 모십니다! -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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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45542
날짜 : 1994.07.0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전태일 제작비 모금을 위한 포스터로 문성근과 이소선의 사진, 후원기간, 모금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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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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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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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94680), 근로자대표(청계피복지부), 한국사회선교협의회 명의의 <전태일 어머니(이소선)은 왜 연행 되었는가?> (등록번호 : 419719), <민중의 소리 작가 장기표씨 긴급조치위반 반공법위반 등 항소심 공판기록> (등록번호 : 120439), 장기표 최후진술 <1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이 한 최후진술> (등록번호 : 484619), 민종배,민종호,민종덕 공동명의의 <협신피혁 민종진씨 유가족의 호소문> (등록번호 : 528540) 등의 문서사료와 David Satterwhite의 박물류 <청계피복노조구속자돕기모금 손수건> (등록번호 : 582008)가 있다. 음성사료로는 <장기표씨 공판 녹음> (등록번호 : 175861), 사진사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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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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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시장상가 피복제품업체 근로자의 임금실태 조사결과> (등록번호 : 512069), 윤보선, 함석헌 등 15인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청계피복노조 탄압에 항의하여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 (등록번호 : 528466), 1981년 서울시의 청계노조 해산명령에 대하여 명령철회를 요구하며 발표한 <성명서> (등록번호 : 333357), 전태일 죽음 이전부터 청계노조 20주년의 역사를 기록한 <청계노조 20년 투쟁사> (등록번호 : 441463), 1984년 청계피복노조를 복구하여 정상화시킬 것임을 주장한 <노동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등록번호 : 426076) , 청계노조 강제해산 후 청계노조원상회복추진위원회가 기록한<청계피복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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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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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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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사건이 신문에 실리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각계에서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 1970년 11월 27일, 전태일이 죽은 지 14일 만에 청계피복노조 결성식이 열렸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 560명을 대표한 대의원 56명이 모인 자리에서 소선은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지켜냅시다. 나 또한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아들, 태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의 노동자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노동조합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았다. 사장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고, 자기 직원들에게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만 하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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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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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입학한 그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한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소수의 부유층을 살찌게 했던 박정희 정권의 추악함에 맞선 거대한 항거의 씨앗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식인과 노동자가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김남주는 한일회담 반대와 교련반대운동, 3선개헌저지투쟁, 노동삼권 보장운동 등에 앞장섰다. 1972년에 김남주는 친구 이강과 더불어 유신헌법에 맞서 전국 최초의 지하신문 《함성》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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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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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조영래는 전태일의 영정 사진을 보며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한국 사회에 노동자의 존엄한 권리문제를 근본적으로 일깨운 일대 사건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영래의 삶의 행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71년 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영래는 사법연수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렸다. 그는 장기표와 더불어 이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그에게 장기표가 두툼한 노트를 건네주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서 받은 전태일이 남긴 일기였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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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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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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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에서 비인도적 사업주들을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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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14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한국노총(위원장 최용수)은 14일 평화시장 종업원 전태일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분신자살 사건에 성명서를 발표, 청소년소녀 근로자들을 나쁜 작업환경에서 저임금과 중노동으로 일을 시킨 평화시장·동화시장·통일상가 등의 비인도적인 사업주들을 규탄하고 정부와 기업주 및 일반사회의 노동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다.『동아일보』 1970.11.14. 7면; 『한국일보』 1970.11.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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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영자협의회에서 노동조건 개선에 대해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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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16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한국 경영자협의회는 16일 노총최용수 위원장 등 간부들을 초청, 서울 세종호텔에서 노사간담회를 갖고 평화시장의 노동조건을 내걸고 분신자살한 전태일 씨 사건에 유감의 뜻을 표하고,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과 노사의 긴밀한 협조로 이러한 상사의 재발을 막도록 합의했다.『조선일보』 1970.11.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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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청에서 근로기준법을 16인 이하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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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17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16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을 16인 이하 사업장에도 최대한 적용하고 미흡한 경우 관계법령을 개정하도록 하겠고 영세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노조 결성을 원할 경우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전태일 씨 사건에 관련하여 회견을 가진 이 청장은 평화시장 등 영세근로자들의 부당한 처우는 근본적으로 노조가 결성되어 있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 이들의 노동조합을 결성할 의사가 있을 경우 기업주의 압력 등을 배제하도록 노동청이 적극 지원, 기업주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또 이들 평화·통일·동화상가의 사업장을 일정한 지역에 집단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업장으로 보아 산재보험에 가입시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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